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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우즈벡 출신 다이아몬드 시장의 새로운 정복자

다이아몬드 시장의 새로운 정복자 Phyllis Berman ·Lea Goldman 기자


레프 레비예프가 드비어스에 맞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새로운 다이아몬드 카르텔 결성에 나서고 있다.

경찰들이 우크라이나 키예프 공항에 도열해 있다. 범죄인을 인도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전용 제트기 ‘걸프스트림 2000’으로 3시간 비행 끝에 오는 억만장자 레프 레비예프(Lev Leviev ·47)를 경호하기 위해서다. 경찰들과 함께 무장 경호원이 두 명씩 탑승한 여러 대의 리 무진과 메르세데스 벤츠 등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레비예프 일행은 마마자국처럼 이곳저곳 팬 간선도로를 따라 신호등까지 조정해가며 질주한다. 자 동차 행렬은 외진 농장과 먼지 자욱한 비포장도로를 거쳐 지토미르 마을에 도착했다.

레비예프는 지토미르의 영웅이다. 그는 나치가 무기고로 사용했고 공산주의자들은 극장으로 이용했던 이 마을의 유대 교회를 복원했다. 사진 촬영이 진행되고, 클레츠머 밴드가 유대인의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소년들은 유대교 경건주의 운동인 ‘하시디즘’의 전통춤을 공연한다. 이런 장면은 러시아와 옛 소련 공화국의 400여 개 마을에서 숱하게 반복됐다. 우즈베키스탄 태생 이스라엘 시민권자로 독실한 루바비치파 신도인 레비예프는 유 대인들의 이스라엘 귀환을 돕기 위해 해마다 3,000만 달러 이상 기부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억만장자 레비예프는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채굴 ·판매업체인 드비어스(De Beers)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레비예프는 드비어스에서 원석을 직접 사들이는 ‘사이트홀더(sightholder)’ 중 하나였다. 이제 그는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세공업자이자 세계 전역의 보석 가공업자에게 원석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레비예프를 지켜본 이들은 오늘날 그를 있게 한 것은 드비어스에 대한 증오였다고 증언한다. 레비예프는 사이트홀더를 다루는 드비어스의 고압적 태도에 격분했다. 드비어스는 사이트홀더들에게 몇 상자의 원석을 제멋대로 정한 값에 떠 넘겼다. 드비어스의 심기를 거스를 경우 거래는 영원히 중단됐다.

레비예프는 드비어스를 대놓고 비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내 사업에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옛 소련에서 자란 나는 두려움이 뭔지 잘 안다. 학교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에 시달렸다. 그때 나는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 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 레비예프는 러시아와 앙골라에서 드비어스의 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했다. 러시아와 앙골라는 금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원석 생산국이다. 레비예프가 드비어스의 교만을 완전히 꺾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주의 아가일 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리오 틴토(Rio Tinto) 같은 업체에는 큰 자극이 됐다. 리오 틴토는 1996년에 사상 처음으로 다이아몬드 4,200만 캐럿을 드비어스를 거치지 않고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한 세공업체에 직접 판매했다. 러시아 정부는 드비어스와 오랫동안 독점 계약을 맺어왔다. 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일부 원석을 다른 업체들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장을 서서히 잃은 드비어스는 캐나다 노스웨스트 테리토리스에서 엄청난 다이아몬드 매장량이 발견되자 한 몫 얻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했다.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 원석 시장 점유율은 5년 전 80%에서 현재 60%로 떨어졌다.

레비예프는 다이아몬드 업계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비어스는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을 실질적으로 좌우해왔다. 어떤 품질의 원석을 누구에게 얼마나 판매할지, 어느 곳의 가공업체를 키울지 드비어스가 모두 결정했다. 그러던 중 레비예프가 다이아몬드 생산국들과 직접 거래에 나선 결과 드비어스와 사이트홀더의 절대적 관계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는 채굴 ·커팅에서 세공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업계 최초의 딜러가 됐다. 그는 이 모든 단계에서 이익을 챙겼다. 레비예프는 억만장자가 됐다.

그는 레프 레비예프 그룹(Lev Leviev Group)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이스라엘 인베스트먼츠(Africa Israel Investments)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이스라엘 인베스트먼츠는 이스라엘 예후드 소재 대기업으로 체코 프라하와 영국 런던의 상업용 부동산, 수영복 제조업체인 고텍스(Gottex), 미국 서남부 지역의 피나 (Fina) 주유소 1,700곳, 뉴멕시코주 ·텍사스주의 세븐일레븐 체인 173개, 이스라엘 최초의 유료도로인 ‘크로스 이스라엘 하이웨이’ 지분 33%, 이스라엘의 러시아어 TV 채널 바슈 텔레카날(Vash Telecanal) 지분 85%를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레비예프는 카자흐스탄의 금광 한 곳, 앙골라 다이아몬드 광산 두 곳의 지분 일부, 우랄산맥과 나미비아의 채굴권까지 소유하고 있다. 그의 자산은 약 2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레비예프의 막대한 부(富) 가운데 일부는 정계 인맥에 힘입었다. 레비예프 가 적대감과 의혹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의 예로 레비예프는 호주 아가일 다이아몬드 광산 지분 40%를 매각하는 입찰에 참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를 지원했던 은행들이 막판에 손을 뗐다. 레비예프의 사업에 투명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소식통들은 해석했다. 설령 레비예프가 깨끗하더라도 그와 거래하는 이들은 다르다. 그가 건장한 무장 경호원들을 어디나 대동하고 다니는 것은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러시아 내 유대인 사회 일각에서는 레비예프가 자신만의 하시디즘을 밀어붙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러시아에 최고위 랍비가 있었지만 레비예프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서 교육받은 한 루바비치파 랍비를 러시아 랍비 수장 자리에 앉혔다. 그 랍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시민권을 부여받은 건 불과 며칠 전이었다. 레비예프는 푸틴과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며 불장난을 한다고 비난받는다. 푸틴이 레비예프 편을 든다면 레비예프의 유대교 활동은 러시아 재계 지배세력인 올리가르흐가 푸틴에게 선언한 약속에 위배되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90년대 초반 뒤가 구린 방식으로 축재한 올리가르흐는 재산을 유지하는 대신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채굴 ·세공 ·판매 등 모든 과정 다뤄

아무도 레비예프의 영향력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와 푸틴의 관계는 92년 시작됐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었던 푸틴은 시장이 주저하던 유대교 학교 설립을 허가했다. 레비예프가 자금을 지원한 유대교 학교는 50년 만에 처음 세워진 것이다. 레비예프는 이스라엘과 중앙아시아를 오가며 대부분이 이슬람 국가인 그곳의 세속정권들을 이슬람원리주의 테러집단에 대한 전쟁으로 끌어들였다. 현재 레비예프는 이스라엘의 극단 정통파 거주지역인 브네이브라크에 살고 있다. 그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누르술탄 나자르바에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다.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 샘 누조 마 나미비아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다.

레비예프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자랐다. 가족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았지만 유대교 부흥운동인 차바드 루바비치에 헌신했다. 남자들은 비밀 할례의식도 배웠다. 레비예프의 아버지는 성공한 직물상이었다. 그의 가족은 7년을 기다린 끝에 71년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 재산을 100만 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바꿨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건너간 가족들은 다이아몬드의 질이 낮아 20만 달러밖에 안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15세였던 레비예프는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대교 학교에서 나와 다이아몬드 커팅을 배우기 시작했다.

97년 레비예프는 다이아몬드 커팅 공장을 설립했다. 당시 막 꿈틀대던 이스라엘 다이아몬드 시장의 투기 바람은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었다. 커팅업자 대다수는 가격이 계속 치솟으리라는 예상에 따라 재고를 확보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시장이 붕괴되자 은행들은 대출을 더이상 연장해주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커팅업체가 파산했다. 레비예프는 재고를 담보로 대출받은 일이 없었다. 재정상태가 양호했던 그는 이후 5년에 걸쳐 12개 소규모 공장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원석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영국 런던, 벨기에 안트베르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러시아 시베리아로 뛰어다녔다.

게다가 레이저 기술과 당시 혁명적이었던 커팅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냈다. 드비어스 판매 담당 이사 출신으로 컨설팅업체인 WWW 인터내셔널 다이아몬드 컨설턴츠(WWW International Diamond Consultants)를 공동 설립한 찰스 윈덤(Charles Wyndham)은 “레비예프가 지니고 있는 천재성 가운데 하나는 첨단 기술을 시장 요구와 절묘하게 접목 한 점”이라고 평했다.87년 드비어스는 레비예프에게 사이트홀더 자격을 부여했다. 사이트홀더는 세계에서 150명도 안될 만큼 극소수만 갖고 있는 자격이었다.

당시 레비예프는 이스라엘에서 내로라 하는 다이아몬드 세공업자로 성장해 있었다. 2년 뒤 레비예프는 러시아 국영 다이아몬드 채굴 ·판매 업체(현재의 알로사)에서 자체 커팅 공장 설립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원석 생산에서 세공까지 마무리하는 최초의 합작회사 루이스(Ruis)는 그렇게 탄생했다. 드비어스는 이전까지 수십 년 동안 모든 원석을 런던 소재 자회사 다이아몬드 트레이딩(Diamond Trading)으로 넘긴 다음 이윤을 붙여 사이트홀더들에게 팔았다. 아프리카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가 지구의 반을 돌아 아프리카 사이트홀더들에게 되팔리는 식이다. 현재 레비예프는 루이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루이스는 연간 1억4,000만 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를 커팅한다. 러시아의 페름과 아르메니아에 연마공장도 갖고 있다.

레비예프는 발레리 루다코프(Valery Rudakov)와 맺은 끈끈한 유착관계를 활용해 러시아 다이아몬드 사업에 개입할 수 있었다. 루다코프는 옛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기에 알로사(Alrosa)를 경영하던 인물이었다. 레비예프는 당시 합작사업으로 크렘린궁에 드나들 수 있게 됐다. 그는 “고르바초프와 사업에 대해 결코 얘기한 적이 없다”며 “70년 동안 폐쇄돼 있던 유대교 학교 신설에 대해 대화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드비어스가 러시아산 원석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루다코프와 고르바초프의 의심에 자문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당시 거래로 레비예프는 러시아 원석 공급량의 일부를 확보하게 됐다. 드비어스가 발끈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95년 사업에 탄력이 붙으면서 레비예프는 사이트홀더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는 드비어스의 보복에 대비해 보석 ·금 ·예술품 ·고미술품 창고랄 수 있는 러시아 재무부 산하 국가귀금속준비국(Gokhran)에서 원석을 미리 확보했다는 게 통설이다. 당시 국가귀금속준비국장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친구인 예프게니 비치코프였다. 러시아 정부는 55년부터 비축해 놓았던 원석과 세공 다이아몬드 일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에서 발간되는 권위있는 업계 전문지 <다이아몬드 인텔리전스 브리프스>(Diamond Intelligence Briefs)의 발행인 차임 에벤조하르에 따르면 당시 물량은 무려 120억 달러 규모였다. WWW 인터내셔널 다이아몬드 컨설턴츠의 공동 설립자 리처드 웨이크워커(Richard Wake-Walker)는 당시 금고에 쌓여 있던 다이아몬드 중엔 100캐럿이 넘는 진귀한 것도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뉴욕 맨해튼 소재 윌리엄 골드버그 다이아몬드(William Goldberg Diamond)의 해외 판매 담당 부사장 배리 버그(Barry Berg)는 “그런 고품질은 한 해 채굴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윌리엄 골드버그는 유례 없는 다이아몬드 범람으로 한 몫을 챙겼다. 국가귀금속준비국의 다이아몬 드 비축량 중 상당 부분은 97년 무렵 고갈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다이아몬드 처분은 정당한 것이었을까. 루다코프는 “국가가 자원을 비축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며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경우 비축 물량을 팔 수 있다”고 말했다.

얼음의 유혹

다이아몬드 원석에는 정확한 값이란 게 없다. 원석 채취 비용은 나미비아의 하상(河床)에서 시베리아의 동토 툰드라에 이르기까지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드비어스의 사이트홀더들은 큰 원석(스페셜)을 절단도 하지 않고 그냥 한 번 살펴본 뒤 입찰한다. 도박같은 다이아몬드 사업에 한 가지 법칙은 있다. 다이아몬드 가격은 채굴업자에서 사이트홀더와 소매업자를 거쳐 소비자까지 이르는 사이 껑충 뛴다는 점이다.

채굴업자는 캐럿당 15달러 지불
남아공에서 10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원석을 채취한다고 치자. 다이아몬드 유형, 광산 상태, 채취 장비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실제 가치는 원석의 품질과 결함에 의해 결정된다.

사이트홀더는 5만 달러 지불
정밀 검토 결과 흠집하나 없는 무색 다이아몬드로 밝혀졌다고 치자. 커팅하면 원석 가운데 35~40%만 남아 배 모양의 3.5캐럿짜리 보석이 만들어진 다. 남은 가루는 커팅 휠을 가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소매업자는 7만5,000달러 지불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라면 소매업자는 유리하게 흥정할 수 있다. 티파니 같은 몇몇 소매상은 광산에서 직접 원석을 구매한다. 크고 품질 좋은 원석이 귀해 물량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원석 대부분은 드비어스의 단일 최대 공급원인 보츠와나에서 들여온다.

소비자는 12만5,000달러 지불
브랜드 다이아몬드가 인기 있다. 그보다 더 인기 있는 것은 1만 개에 1개 꼴인 컬러 다이아몬드다. 가장 많이 찾는 것이 58면 라운드다. 다이아몬드가 사이트홀더의 손에서 소비자의 손가락에 끼어지기까지 평균 24개월 걸린다.

푸틴 등 정계 연줄 타고 급부상

분명한 것은 매각수익이 정당하게 사용되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러시아에 주재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 전문기자 존 헬머는 “크렘린 비자금으로 쓰인 게 한 번 이상이고 그 밖에 의심스런 돈이 여러 차례 흘러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는 선거자금으로 쓰였고 해외 계좌와 개인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가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98년 미 연방수사국(FBI)의 토머스 네어 부국장보는 하원 은행 소위원회에서 옛 소련 붕괴 직후 자본주의 설립 혼란 기에 다이아몬드 등 러시아 국가 자산 매각수익이 해외 계좌로 흘러 들어간 과정을 증언했다.

네어는 하원 소위원회에서 1억7,000만 달러 상당의 원석이 러시아로부터 미 샌프란시스코 소재 커팅 ·연마 공장으로 운반된 이른바 ‘골든 ADA’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다이아몬드>의 저자 매튜 하트는 보석과 현금이 도중에 사라져 고급 주택 매입과 정치성 대가로 지출됐다고 주장했다. 골든 ADA 사건과 관련해 권력남용 혐의로 구속됐던 비치코프는 훗날 옐친에게서 사면받았다.

레비예프가 이 거래를 중개했다면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버그는 “오늘 사서 한 시간 뒤 팔면 내일 돈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레비예프는 러시아 국가귀금속준비국의 다이아몬드 처분에 대한 연루설을 “사실무근”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옐친 집권 시절 그는 눈에 띄지 않게 행동했다. 이는 현명한 처신이었다. 푸틴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보리스 베레조브스키(Boris Berezovsky) 등 권력에 접근했던 몇몇 ‘패밀리’를 내쳤기 때문이다. 레비예프는 푸틴과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푸틴과 이스라엘 저명 정치인들의 만남을 최초로 주선하기도 했다.

드비어스는 90년대에 레비예프 외에 다른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른바 ‘피의 다이아몬드’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 제3의 다이아몬드 원석 생산국 앙골라에는 도스 산토스 대통령에 맞선 반군이 들끓고 있었다. 반군은 다이아몬드 생산지역을 장악했다. 그리고 연간 12억 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를 시장에 반출했다. 유엔은 98년 앙골라 반군으로부터 다이아몬드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재했다. 런던 소재 인권단체 글로벌 위트니스는 드비어스를 ‘책임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기업’으로 지목했다. 드비어스는 압력에 못 이겨 앙골라 구매사무소를 폐쇄했다. 하지만 앙골라에서 다이아몬드 광산 탐사는 계속했다.

레비예프는 96년 이미 앙골라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6,000만 달러를 투자해 앙골라 최대 다이아몬드 광산의 지분 16%를 받았다. 레비예프는 “도스 산토스가 앙골라를 도와줄 사람은 나뿐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레비예프는 광산 보안을 전 이스라엘 정보 요원들에게 맡겼다. 워싱턴 소재 시민운동단체인 공직자윤리감시센터의 보고서는 레비예프와 앙골라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한 정보와 드비어스에 대한 혐오로 서로 끈끈하게 얽혀 있었다고 분석한다. 레비예프는 도스 산토스에게 앙골라 재정을 확충하고 불법 수출도 줄여주겠다고 제안했다. 또 앙골라산 원석 독점 구매업체인 아스코프(Ascorp)의 지분 51%를 앙골라 정부에 넘겼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도스 산토스의 딸 이사벨라는 아스코프 지분을 따로 갖고 있었다. 이에 대해 레비예프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레비예프가 말하기 꺼리는 뒷얘기도 있다. 그의 친구 중에는 아르카디 가이 다마크라는 인물이 있다. 가이다마크는 이스라엘과 러시아 이중 국적자로 도스 산토스의 고문이었다. 공직자윤리감시센터는 90년대 중반 가이다마크가 러시아 측과 모종의 협상을 벌였다고 전했다. 앙골라가 러시아에 진 빚을 탕감받기 위해서 였다. 2000년 1월 아스코프가 앙골라산 다이아몬드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받은 지 한 달 뒤, 가이다마크는 아프리카 이스라엘 인베스트먼츠 지분 15%를 매입했다. 그로부터 1년도 채 안돼 레비예프는 가이 다마크의 지분을 다시 사들였다.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레비예프는 “가이 다마크가 좋은 가격에 주식 매각을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가이다마크는 무기밀매 혐의로 프랑스 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다. 레비예프와 가이다마크는 이제 사업 파트너가 아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단짝이다.

레비예프는 도스 산토스에게 한 약속을 지킨 것 같다. 앙골라 정부가 보고한 다이아몬드 매출 관련 세입은 98년 1,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6,200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앙골라 밖으로 밀수출된다고 에벤조하르는 주장한다. 레비예프로서는 앙골라산 원석을 연간 최고 10억 달러어치나 구매하는 게 큰 부담이었다. 원석을 속히 판매하라는 압력에 항상 시달리는 데다 채광업자에게 언제나 최고 가격을 제시할 수도 없었다. 에벤조하르는 “채광업자들이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눈 뜨고 난 뒤 밀수가 성행했다”고 설명했다. 레비예프가 올여름 앙골라산 다이아몬드에 대한 독점권을 잃은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레비예프는 앙골라에서 드비어스와 끈질긴 악연을 이어갔다. 2000년 3월 드비어스는 벨기에 법원에 소량의 다이아몬드 선적물을 압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은 레비예프의 물건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레비예프는 몇 달 뒤 원석을 돌려 받는 데 성공했다. 드비어스는 98년 아스코프와 맺은 계약이 무효라며 앙골라산 다이아몬드에 대한 권리를 되찾고 도스 산토스 정부에 빚 9,200만 달러를 받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드비어스로서는 싸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스코프의 거래는 드비어스가 자사 광산에서 캐낸 다이아몬드를 사상 처음 다른 업체, 이번 경우 최대 적인 레비예프에게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2001년 5월 드비어스는 앙골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다음 접전지는 나미비아다. 나미비아는 독일 태생의 남아공 기업가 에른스트 오펜하이머 (Ernst Oppen-heimer)가 1차대전 뒤 채굴권을 사들인 이래 드비어스 측이 계속 채굴해 온 곳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나미비아도 풍부한 자국산 원석을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싶었다. 따라서 2000년 생산자들에게 원석 가운데 일정량을 나미비아 내 커팅업체에 판매하도록 못박았다. 드비어스는 반발했지만 결국 굴복하고 나미비아와 합작으로 커팅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원석은 계속 런던 사무소에서 들여오고 있다.

레비예프는 상황을 다시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했다. 그는 2000년 역외 다이아몬드 채굴업체 남코(Namco)의 지분 37%를 3,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거래의 일환으로 나미비아 해안지대에 연마공장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그 뒤 남코의 채굴장비가 고장나고 파트너들이 더이상 수리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자 레비예프와 파트너 사이는 틀어지고 말았다. 레비예프는 보복에 나섰고 300만 달러라는 헐값에 파산한 남코의 채굴권을 모두 인수했다. 레비예프는 러시아 ·앙골라 ·나미비아에서 사업 제휴를 다양화하고 있다. 이는 원석 공급지를 지리적으로 다변화해 직접 소유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는 최근 앙골라 동북부 카마푸카 광산 지분 일부를 인수하고 러시아 우랄산맥의 다이아몬드 탐사 허가도 획득했다.
남아공 국영 다이아몬드 채굴업체 알렉스코르(Alexkor)의 일부 지분인수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코가 갖고 있는 채굴권과 케이프타 운 소재 상장 채굴업체인 트랜스 헥스 그룹(Trans Hex Group) 지분 일부를 맞거래하는 데도 실패했다.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이다마크와 맺고 있는 관계로 추정된다. 하지만 레비예프는 두 거래에 모두 입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직 러시아 국영기업으로 남아 있는 알로사가 민영화할 경우 푸틴의 친구 레비예프는 분명 응찰할 것이다.

레비예프는 자신이야말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직통합을 이룬 다이아몬드 딜러”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드비어스 역시 수직통합으로 나아가고 있 다. 시장 지배력이 약해진 드비어스는 소매까지 손댈 수밖에 없었다. 2000 년 드비어스는 세계적 명품업체 LVMH와 2억 달러씩 투자해 고급 다이아몬드 브랜드를 생산하기로 했다. 채굴업의 손실을 만회할 만한 수익이 창출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러나 합작사 드비어스LV는 지금까지 손실만 입었다. 지난 7월 드비어스는 오랜 사이트홀더 120명 가운데 35명의 자격을 박탈했다.

대신 10명을 새 사이트홀더로 지명했다. 드비어스는 최상급 원석을 소매용으로 확보해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드비어스는 이를 완강 히 부인하고 사이트홀더 탈락은 ‘객관적 평가’의 결과라고 해명했다. 드 비어스LV는 아직도 기대했던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런던 본드 스트리트에 단독 매장이 한 곳 들어섰을 뿐이다. 매디슨 애비뉴의 매장 설립 계획은 무기한 연기됐다.

드비어스는 브랜딩 트렌드에 불을 댕겼다. 벨기에 사이트홀더인 플루체니 크 그룹(Pluczenik Group)은 패션업체 에스카다(Escada)와 손잡고 자사 명품 브랜드로 12면 ‘에스카다 컷’을 선보였다. 텔아비브 소재 사이트홀더 레오 샥터 다이아몬즈(Leo Schachter Diamonds)는 약 500만 달러를 들여 < 피플>과 <배너티 페어> 등 잡지에 66면 ‘레오’ 다이아몬드 광고를 게재했다. 티파니(Tiffany)는 50면 사각 컷 ‘루시다’ 다이아몬드를 특허냈다. 뉴욕의 윌리엄 골드버그는 고풍스런 ‘아쇼카’를 선보였다. 레비예프도 최상의 원석을 비축해 놓고 5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비비드 컬렉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레비예프는 남보다 한 발 앞서기만 하려는 구태의연한 게임과 추잡한 다이아몬드 사업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 이는 그의 최근 투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레비예프는 앞으로 4년 동안 모스크바 도심의 3개 오피스 건물 등 러시아 부동산 개발에 1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뉴욕 ·댈러스 ·샌안토 니오의 주상복합단지에도 비슷한 액수를 투자할 생각이다. 정치활동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6월 모스크바에서 푸틴과 손해보험업체 로스(Loews) 의 CEO 제임스 티시(James Tisch) 등 미국 내 유대인 지도자들이 한데 만 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는 양국 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다.

레비예프의 종교적 자선사업은 정당성을 얻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는 최근 러시아와 옛 소련 공화국에 국한됐던 차바드 루바비치 운동을 서구까지 확대했다. 올해 독일 드레스덴에 유대교 학교를 설립할 생각이다. 유대교와 거리가 먼 유대인 이주민들에게 유대교를 가르치려는 것이다. 지난해 신설한 뉴욕 퀸스의 유대교 학교에서는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출신 유대인 학생 350명이 교육받고 있다. 레비예프는 이런 사업에 대해 “선조의 유산을 지키자는 것”이라며 “유대인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말한 그는 잠시 후 모스크바 셰레메 티예보 국제공항으로 급히 떠났다. 그곳에도 중무장한 차량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눈물도 없는 ‘커팅’

20년 전 맨해튼 47번가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에는 1,200여 명의 다이아몬드 커팅 ·연마전문가가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들의 수는 계속 줄었다. 뉴욕의 고비용에 밀려 인건비가 싼 인도와 중국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12개 정도의 업체에 300여 명만 남아 크고 비싼 원석을 전문으로 다룬다. 지난 7월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 원석 독점 구매권자인 사이트홀더 35명을 명단에서 제외하면서 다이아몬드 커팅 ·연마전문가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탈락한 사이트홀더 가운데 상당수가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에 자리 잡고 있다.

드비어스의 조처는 사이트홀더뿐 아니라 사이트홀더로부터 필요 없는 다이아몬드를 구매해 판매하는 딜러까지 당황하게 만들었다. 현재 드비어스와 티파니같은 소매업체는 광산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직접 조달한다. 그렇다면 레비예프가 사이트홀더의 처지를 개선해줄 수 있을까. 레프와 형제지간으로 레프 레비예프 그룹의 일상 업무를 관장하는 모셰는 “신규 고객에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레비예프는 자사 브랜드 다이아몬드인 ‘비비드 컬렉션’용 물량을 따로 떼어 놓고 있다. 비비드 컬렉션의 평균 가격은 10만 달러다.

레비예프의 물량 비축으로 그렇잖아도 드비어스로부터 버림받은 사이트홀더들 처지만 더 어렵게 됐다. 고급 보석 제조업체 엘라라(Elara)의 최고경영 자(CEO) 일런 도런(Ilan Doron)은 “원석을 찾아 세계 전역으로 돌아다닐 사이트홀더가 많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엘라라는 아직 드비어스로부터 원석을 공급받고 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물량 감소로 올해 말까지 맨해튼 47번가 상점 가운데 반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맨해튼 소재 사이트홀더 윌리엄 골드버그는 드비어스의 제안에 따라 지난 3년 동안 새 브랜드 ‘아쇼카’ 개발 ·판촉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드비어스에 채이고 말았다. 드비어스에 지난 50년간의 돈독한 관계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14. 우즈벡 출신 다이아몬드 시장의 새로운 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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